민트페이퍼 7월의 potm 윤상 - 그 남자에 관해, 그땐 몰랐던 일들
민트페이퍼  |  2009-07-23 10:18:47  |  3,063

* 본 인터뷰는 매거진 [W Korea]에서 제공해주셨으며,
아방가르드한 (고급) 셔츠를 착장한 윤상님의 멋진 사진은 [W Korea] 8월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인터뷰 기사를 제공해주신 [W Korea] 피처 디렉터 황선우님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오빠가 돌아왔다. 윤상 말이다. 6년 만에 내놓은 6집에서는 친근한 윤상 맛이 난다.
반음을 많이 쓰는 아름다운 멜로디, 심장박동을 닮은 8비트 리듬,
박창학의 속깊은 노랫말과 그의 고운 음색이 재료가 되어 빚어내는 담백한 달콤함.
미국 유학을 떠나기 전에는 그가 지나치게 앞서가서 대중과 시차를 겪는 불운한 뮤지션이라고도 생각했지만 이제 고쳐 쓴다.
윤상의 가려진 시간 사이에, 가요의 오래된 미래가 있었다고.




[W] 스튜디오 뮤지션이라고 생각했는데 공연이 기대 이상이었어요. 다채로운 악기 편성과 훌륭한 사운드가 인상적었어요.

[윤상] 공연의 뮤직디렉터를 맡아준 정재일, 일렉트릭 뮤지션 하임, 그리고 처음 시도해본 8명의 스트링 세션 등이 적절하게 배치된 것 같아요. 드러머가 없이 프로그래밍 된 리듬을 플레이한 것은 새로운 시도인데, 연주하는 사람들의 흥을 깎진 않을까 하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관객 반응이 좋아 힘을 내는 중이죠.


[W] 에스페란토로 된 노래 ‘Ni Volas Interparoli’를 연주할 때는 언어 창안자의 연설문을 영상으로 보여주기도 했는데요.

[윤상] ‘다른 수고 없이 인간들이 소통할 수 있다면?’ 이라는 아이디어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해서 인류의 열린 대화에 대한 열망을 담은 전문을 올린 거예요. 음악이야말로 하나의 언어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대중음악이 전세계적으로 공감할 수 있을만한 어떤 상태인지는 자체 점검을 해봐야할 것 같아요. 영화를 비롯한 한국의 다른 대중문화 분야에 비해 ‘음악은 더 많은 사람과 공감할 수 없나’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런 기분으로 앞으로 계속 해나가야겠죠. 전문가적인 입장으로 볼 때는 여전히 트렌디한 음악에서도 국산과 외산의 차이가 느껴져요. 나 자신이 라디오에서 팝을 더 많이 듣던 세대인데 스스로 하면서 왜 갭을 못 느끼겠어요. 왜 우리는 안 될까, 라는 생각 때문에 결국 사운드 엔지니어링 공부를 시작하게 된 거구요(버클리 음대 유학 이후 NYU에서 뮤직 테크놀러지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곡 만드는 사람 가운데 이런 것에까지 매달려서 해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많진 않은데, 재미도 느끼지만 숙제라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어요. 1집 때부터의 가장 큰.


[W] 2003년 유학을 결심했던 당시 “한국 대중음악 시장이 여러 가지 형태로 바뀌고 거기에 적응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생각이 복잡해졌다”라고 동기에 대해 얘기했는데, 유학을 갔던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생각하나요.

[윤상] 제가 떠난 당시 상황이 최악이었어요. 저처럼 30대가 넘어간 가수들은 라이브에서 완벽하게 가창력으로 승부하거나, 아니면 TV에서 예능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야 했죠. 가서 꽤 많은 부분이 풀렸어요. 가장 확실하게 느낀 부분은, 우리가 대중음악에서 하나의 유행을 소화했다 흡수하고 지나갈 때, 그곳은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시대와 장르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특징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었어요. 뮤지션 뿐 아니라 콘솔, 엔지니어까지 대중음악의 역사가 기록돼있어요. 사람들이 ‘어떤 마인드로 그 시대를 만들어가고 풍미했는가’까지 배울 수 있는 거죠. 그래서 후배들이 어떤 시대의 조류를 무작정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오해가 없이 가져와 활용하고 있어요.


[W] 배운 것들을 한국에 돌아와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하는 해답도 얻었나요.

[윤상] 그런 식으로 생각은 안 해봤고, 그저 개인적인 궁금증이었어요. 80년대 초반 흑인음악들이라든지, 영국 뉴웨이브 음악... 어떻게 저런 사운드가 프로듀스 됐을까하는 궁금증. 그 의문을 해결했다 해도 이미 지난 음악들이니까 그걸 다시 보여주는 건 의미가 없겠죠. 지적인 욕구건 단순한 호기심이건 간에 영원히 해결 안 날 것 같던 궁금증이 풀렸다는 점이 제게는 의미가 있어요.


[W] 앨범에서 점점 연주곡들이 늘어났어요. 5집 [There Is A Man]이나 일렉트로니카 프로젝트 팀인 ‘모텟’의 앨범은 점점 파격적인 행보로 보였는데, 6집은 오히려 예전의 편한 노래로 돌아간 것 같아요.

[윤상] 마음을 비우게 된 부분이 있어요. 모텟 멤버들 카입, 주노는 후배지만 저보다 일렉트로니카에 대해서 훨씬 깊게 아는 친구들이에요. 제 경우는 상업적인 면하고 결부된 일렉트로니카였다면, 나머지 멤버들은 정말 음악 자체가 매력적이어서 전자음악에 빠져버린 세대에요. 그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중요했어요. 카입은 이번에 런던에서 열리는 아폴로 달 착륙 50주년 기념행사에서 ‘브라이언 이노’의 곡을 어쿠스틱으로 편곡해 연주하는데 참 자랑스러운 일이에요. 이런 부분에서 음악하는 사람으로서의 고집을 풀 수 있는 창구가 열려있기 때문에 이번 앨범은 ‘노래하는 윤상’도 함께 존재하는 앨범으로 만들어 보자, 라고 생각하고 나자 부담이 사라지고 곡이 풀리더라구요.


[W] 대중적 음악과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 사이의 균형을 그런 식으로 잡는 거라 보면 될까요. 윤상으로서는 좀 더 팬들에게 친근한 음악, 모텟이나 다큐멘터리 [누들 로드]의 음악 감독처럼 프로젝트 성격으로 일할 때는 실험적인 음악을 시도하는 식으로.

[윤상] 유학 가기 전까지만 해도 작곡가로 데뷔해서 녹음실에서 일어나는 전반적인 모든 일에 참여하고, 반주를 프로그래밍하는 프로듀서로서의 일을 했지만, 동시에 구멍가게 아주머니한테서 ‘요즘 왜 티비 안나오냐’는 질문을 받는 ‘연예인’이기도 했어요. 이제는 그런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창구가 생겼으니까 가수라는 말 듣는 게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아요. 노래는 항상 나에게는 풀리지 않는 숙제 같은 거였어요. 별로 즐기지도 않았고. 하지만 이번에 라이브를 몇 번 하다 보니까 그 안에서 고립된 분위기에서 대중들하고 소통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어요. 적어도 지금은 무리한 요구를 하는 팬들은 사라져서 편해요.


[W] 무리한 요구란 건 어떤 건가요.

[윤상] 왜 당신은 다른 스타와 같은 화려함을 보여주지 않느냐, 하는 거죠.


[W] 저에게 윤상은, 음악이라는 옷을 입으려다 딸려온 연예인이라는 가방을 짊어지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이었는데요, 그 짐을 어서 벗고 싶어 안절부절 못하는 걸로 보였어요.

[윤상] 그런데 그걸 못 본 사람들이 많아요. 오히려 ‘우리 반 다른 친구가 좋아하는 연예인보다 더 빛났으면’, 하고 기대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어요. 물론 그런 팬들 덕분에 음반을 백만장씩 팔 수 있었으니 감사할 일이죠. 철저한 스타가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015B’처럼 그 당시 젊은 애들의 감수성을 대놓고 노래해서 판매량으로도 이어지는 길이었을 텐데 직접적인 화법으로 하는 노래들은 저하고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왔어요. 그래서 가장 먼저 인기가 추락한 사람도 저일텐데 (웃음) 그럼에도 지금까지 정리된 제 음악을 들어주는 팬들에게는 감사하게 생각해요. 이렇게 되기를 바라왔기 때문에.


[W] 나이 먹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드나요.

[윤상] 나이 먹어서 좋을 건 없죠(웃음). 하지만 욕심 같은 걸 자연스럽게 버리게 되었다면, ‘나이 먹어도 내가 잘 적응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은 들어요. 솔직히 나이 생각을 안 해요. 대학이라는 데가 젊은 애들 투성이고, 한국처럼 격식 차려 존대하는 게 아니라 영어로 얘기하니까 지난 6~7년 동안 나이 먹는다는 생각을 못한 것 같아요.


[W] 90년대 뮤지션들 가운데 어느날 돌아보니 혼자 남아있는 느낌은 안 드나요? 어떤 사람은 종합예능인, 누구는 작곡이나 프로듀스 쪽으로 갔죠. 여전히 자기 이름을 걸고 음악을 하고 있는, 살아남은 자의 기쁨이랄까 슬픔이랄까.

[윤상] 처음부터 비교하고 싶은 사람은 없었어요. 각자 살아남기 바쁘니까. 지금도 한 가지 아는 건, 살아남든 그렇지 않든 나이 먹어서까지 음악을 하고 있다면 분명히 그 사람도 힘든 시간을 겪을 거라는 사실이에요. 저 역시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아요. 어떤 방법으로든 오랫동안 자기를 지켜봐주는 사람들을 놓치지 않고 있는 사람이라면, 다 존중해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젊었을 때는 동시대 활동했던 사람들 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도 있고 안 드는 사람도 있고 했지만, 10년 이상 시간이 지나니 그런 사심이 없어지더라구요. 그들도 나도 영역을 서로 침범할 일이 없으니까. 인기라는 게 누군가 독식하는 거라는 생각이 남아있던 세대라서 경쟁자로 묶였는지도 모르겠어요. 우리 이전 조용필씨 세대에는 한사람만이 독보적이었지만, 문화는 그런 게 아니잖아요. 요즘은 오히려 다양해지고, 공평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W] 요즘의 한국 대중음악씬은 아이돌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요.

[윤상] 아이돌 중에 좋아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회사에서 그 사람들을 얼마나 체계적으로 훈련시키고, 그 사람들의 음악을 위해 전문프로듀서들이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생각하면 잔소리만 많이 하는 음악가들보다는 그들이 훨씬 더 긍정적인 에너지로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6집 내느라 가요 프로그램을 일부러 찾아봤어요. 공감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죠. 이제 그쪽하고는 관계가 없으니까, 거기 나갈 일도 없고 불러도 곤란하니까... 데뷔 때부터도 사실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한 일은 별로 없었어요. 차라리 버라이어티 이런 데를 많이 나갔죠.


[W] '이별의 그늘'로 활동할 때 가요 순위 방송 나온 걸 봤어요. 바이올린 켜는 언니 대동하고...

[윤상] 심지어 저더러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노래하라고 한 피디도 있었어요. 기껏 내가 진지하게 만든 음악을, 연출 욕심에 희생되어 우습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오빠’로 불러달라고 작정하고 출발한 사람도 아니었고, 인기관리에 너무 몰두해 있는 발라드 오빠들과 저를 동일시하기도 싫었어요. 그래서 힘들었죠. 나도 그 안에 있고, 다 같은 식구처럼 생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꾸 달라지고 싶다보니 힘이 빠졌죠. 그래서 당시 다른 친구들보다 롱런하지 못했으니 자업자득인지도 모르겠어요. 우리 와이프 같은 경우도 제가 불량해 보여서 싫어했다고 하니까요(웃음). 나름 기획사 안에서도 고집을 많이 부렸어요. 곡도 내가 다 쓰고, 반주도 다 내가 만들고... 음악적으로 기획사에서 돈 들 일이 없다 보니 회사 안에서 발언권이 셌던 셈이죠.


[W] 모텟 앨범과 같은 활동은 다시 예정되어 있진 않나요?

[윤상] 모텟의 음악은 받아들일 마음이 있고 없고에 따라서 극명하게 다른 것 같아요. 우리 와이프도 못 들어요. 차에서 제가 심각한 전자음악을 듣고 있으면, 귀 아프다고 끄라고 해요. 그래서 아들 찬영이가 옹알이하는 소리를 가지고 만든 게 ‘Play with me’ 란 곡이에요. 발표는 안 됐는데, 와이프를 위해 들려주고 싶었어요. 이런 것도 있으니까 너무 거리감 느끼지 말라고. 하지만 강요할 생각은 없어요. 제가 너무 좋아하는 분야일 뿐이니까. 일렉트로니카를 한다는 건 자기 음악의 연출을 어떤 연주자의 도움이나 노래 없이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의미에요. 전자음악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멋지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나이트클럽 DJ들 말고(웃음). 그런 사람들이 부러워요.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 부러워만 하는 것도 팬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부분이라는 것도 이제는 깨닫게 됐지만. 그런 건 짬날 때마다 들려드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W] 모텟에 대해 음악하는 사람들은 특히, 용감한 시도였다고 말하는데요.

[윤상] 마음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랩탑 하나로 하는 건데. 모텟도 1천 장 밖에 안 찍었어요. 상업적으로 생각했으면 못했을 일이죠. 모텟은 입지 자체가 확고하지 않을 만큼 시장 자체가 없어요. 한편으로 제가 메이저리그에서 알려진 사람이다 보니까 다른 멤버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어요. 여기에는 완벽한 모순이 존재하는 게, 그나마 제가 멤버로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은 기자분들 앞에서 보여드릴 수 있었을 수도 있고, 오히려 윤상이 참여했다는 이유로 과감하게 PR을 못 했던 부분도 있어요. 유행을 타는 음악이라기보다 사운드적인 실험이에요. 비주얼 아티스트와 인터랙티브한 공연을 한다든가, 내년에라도 모텟의 이름으로 멋진 쇼케이스 같은 걸 할 수 있지 않을까... 통기타 세대라는 말이 있잖아요. 기타는 자기가 노력만 하면 혼자서도 근사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악기였어요. 이제는 간편해진 컴퓨터라는 도구를 이용해서 젊은이들이 직접 음악을 만들고 자기 음악을 연출하는 데 재미를 많이 느꼈으면 하는 기대를 갖게 돼요.


[W] 이전 ‘노총각 4인방’으로 [라디오스타]에 출연했는데 왜 나온 건지 좀 뜨악했어요.

[윤상] 이현우형 결혼이 제일 컸어요. 요즘도 가끔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인데, 우리는 한명이라도 빠지면 의미 없어지니까 다 같이 나갔어요. 지금도 연예오락프로그램에 대해 반감은 없어요. 단지 두려움만 있을 뿐이지. 혹시 거기서 존재감을 잃고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은 신세가 되지 않을까 하는. 나가서 하는 얘기가 재미있다면 그것도 특별히 나쁠 건 없지 않나요. 프로그램을 사전에 봤는데, 윤종신이 있으니까 좀 감싸주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김구라씨도 평소보다는 말을 아꼈던 것 같아요.


[W] 뮤지션에게 영감의 재료는 사랑의 아픔이나 이별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잖아요. 결혼을 하면 안정에 접어들고 음악적으로는 심심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윤상] 위험성이 있긴 해요. 하지만 그런 부분에 대한 제약이 없었기 때문에 이 친구랑 같이 살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음악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터치를 안 해요. 저도 여러 가지 사례들을 보고 들었어요. [쉘 위 댄스?]를 연출한 수오 마사유키라는 일본 감독이 제가 진행하는 방송에 나온 적이 있어요. 그 영화 여주인공인 배우와 결혼을 한 상태였는데, 주변 선배 감독들이 ‘좋은 시절 다 갔다’, ‘네 영화는 아무도 안 볼 것이다’, ‘결혼하고 행복하다면 영화 만들기 힘들다’라는 얘기를 했다고 하더라구요. 나도 곧 결혼할 건데 무슨 소리 하는 거냐, 속으로 그랬어요. 그래서 결혼 이후에 낸 이번 앨범에는 특히 시간도 더 많이 들였어요. 개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절망을 노래하고 외로움을 노래하는 사람에게는 결혼이 이율배반적인 결과일 수 있겠지만, 저는 오히려 결혼을 통해서 가족의 소중함, 아이에게서 오는 기쁨을 새로 발견했어요. 외아들로 자라서 타인에 대해 신경을 쓰고 내 일처럼 느낀 일들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 감정의 미개척 영역을 새로 밟으면서 음악적으로 새로운 자극이 됐어요. 저에게서 아주 마이너적인 감성을 기대하는 분들께는 예전만 못할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는 또 다른 창구를 찾았다고 생각해요.


[W] ‘노래는 노랫말이 생명이고, 노랫말을 쓴 사람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전혀 다른 얘기가 될 수 있다’라는 얘기를 했는데.

[윤상] 좋은 음악이 있으면 가사가 아예 안 들려요. 그런데 지금 대중음악을 듣는 95%의 대중들은 가사를 먼저 들어요. 그건 제가 전문가적인 입장에서 정확한 데이터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래서 가사를 어떻게 이용하면 많이 팔리는지도, 사실은 알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남들에게 줬던 몇몇 곡들 가운데는 그 작전이 먹힌 노래들도 있구요.


[W] 통속적인 가사의 훅을 말하는 건가요?

[윤상] 네. 이를테면 백지영의 ‘총맞은 것처럼’도 가사에서 제목에서 오는 훅이 대단하잖아요. 015B도 가사가 훨씬 더 많이 사랑받은 팀이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피부에 와 닿을 만큼 가깝게 감성을 노래했잖아요. 근데 제 노래는, 가사가 그렇게 직접적인 건 좋아하지 않아요. 제 이미지가 그걸 소화할 수 있다면 할 거예요. 그런데 저는 기본적으로 그런 표현을 소화해내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W] 박창학씨와의 파트너십이 신기한 것 같아요. 아이디어 단계부터 공유하고 가사와 곡을 함께 진행하는 건 요즘 힙합 랩 만드는 스타일인데, 그렇게 음악적 파트너십이 가능하다는 게 신기해요.

[윤상] 저에게 제일 중요한 인연이라고 생각해요. 저보다 음악을 더 많이 듣는 사람이 있다는 데서 경외감을 느껴요. 많이 듣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고, 나보다 문학적으로 뛰어난 친구가 옆에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에요. 동률이가 가끔 가사 쓸 때가 더 힘들다는 얘기를 해요. 그런 힘듦에서 한발짝 벗어날 수 있다는 게 고마워요. 가사를 만드는 일에서 즐거움을 느껴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제가 만든 곡 중에 노랫말을 붙인 건 두세곡 밖에 안 돼요. 그러다 보니 훨씬 더 사운드라든지, 음악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건 그의 역할 덕분이에요. 저도 노래에 깊이 있는 메시지 담고 싶은 생각이 왜 안 들겠어요. 그런데 누군가 더 멋진 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는데 왜 굳이(웃음). 이번 앨범 하면서 느꼈는데 정말 어떤 글이 돌아올까 기대하면서 곡을 들려주게 돼요. 그런 부분에서는 행운이라고 생각하구요. 그 안에서 오는 힘든 점도 분명히 있지만, 박창학씨와 저는 어떻게 보면 그 부분을 거의 극복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박창학씨도 한사람의 음악인으로 생각해요. 음악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고, 세계의 수많은 훌륭한 곡들 가사를 다 해석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고. 그런 친구가 있다는 건 어떻게 보면 날개를 하나 달고 있는 입장이라고 감히 얘기할 수 있어요.


[W] 두 분이 고등학교 친구로 만났다고 들었는데요.

[윤상] 같은 반을 한 적은 없어요. 고등학교 수련회에서 기타를 치고 있었는데, 제 연주에 가장 많은 칭찬을 해주는 친구였어요. 이 부분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니, 하면서 급격히 친해졌죠. 그때는 솔로 기타가 유행하는 시절이었어요. 기타리스트 하면 속주기타. 근데 저는 백킹기타 위주로 연주를 했는데 이 친구 혼자 너무 멋있다는 얘기를 해준 거죠.


[W] 헤비메탈이 대세이던 남학교에서 섬세한 음악을 하면서 친해진 건, ‘전람회’도 비슷했다고 하던데요.

[윤상] (웃음) 남자는 섬세하면 지탄받던 시대였으니까요. 요즘은 화장품에 관심 있는 남자들도 많은데, 그때 같았으면 머리 빡빡 깎여서 어디 군대 보내야 하는 분위기였죠.


[W] 주목받던 동세대 ‘가수’들 중에 가장 음악으로 깊이 걸어들어 간 것 같아요. 동년배 뮤지션들 사이에서도 부러움의 대상이지 않나요.

[윤상] 그들은 제가 이렇게까지 오기까지의 힘들었던 다른 점을 모를 거예요. 그 사람들도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스타로서 자신을 얼마만큼 유지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는지 스스로의 판단이 있었겠죠. 그런데 과연 있을까요, 저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저보다는 다들 돈 잘 벌고 잘 사는데(웃음).


[W] 부인은 뮤지션의 와이프로서 아티스트로서 꿈을 펼칠 수 있게 도와주는 편인가요, 아니면 좀 더 생활음악인이 되어주길 바라나요?

[윤상] 결혼 초기만해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크게 겪지 않으니까 몰랐겠죠. 근데 아이가 생기고, 생활을 해야 하고, 학비가 엄청나게 드니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직접적으로 물어보기도 해요. 저에게 한 가지 철칙은, 돈을 따라가다 보면 한도 끝도 없다는 거예요. 타이밍이 맞을 때 되겠죠, 뭐. 아직은 철이 없나 봐요.


[W] 한국을 비운 몇 년 사이에 점점 더 모두에게 돈이란 곧 편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 되어버렸어요. 심지어 아이들에게까지.

[윤상] 그만큼 우리 사회에 ‘있는 사람에게는 너무 잘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한 마디로 자존심이 뭔지 모르는 거죠. 이 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가 그거고. 제가 정치가도 아니고, 누구처럼 계몽하기 위해 음악하는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특별한 철학은 없어요. 하지만 다만 그런 것에 휘둘려가는 건 피하고 싶어요. 나약한 마인드일지라도.


[W] 학교가 한 학기 남았다고 들었어요. 학업을 마치면 한국에 돌아올 계획인가요?

[윤상] 구체적인 결정은 못 했어요. 거기서 아이들이 둘 태어나고, 첫애가 여섯 살이다 보니까 그곳에서 가족들의 삶도 있구요. 이번 앨범도 상업적으로 크게 기대하는 바는 없지만, 기회가 많이 생기면 좋겠어요. 한국에 돌아와 다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정체성에서의 갈등이 있을 것 같기도 해요. 그래미라도 받으면 미국서 살겠어요, 이런 얘기 하겠지만 아직은 제 음악을 여기서 기다려주는 사람이 많으니까요(웃음).

(W Korea, 에디터 | 황선우)


 

멋진 기사와 사진이 실린 잡지를 언능 만나고 싶네요. 이번에 윤상씨는 스튜디오에 안오시나요???
서윰
2009-07-23  


오아 간만에 심도 깊은 인터뷰네요. ㅎㅎ
근데 8월호면 이번 달에 나오는 책이겠네요. 벌써 나왔으려나...
사진도 궁금궁금 ㅋㅋ
이강무
2009-07-23  


ㅋㅋ 사진 나왔는데 좀 작게 나와서 아쉽!!! 디올옴므 셔츠와 샤넬팬츠~~럭셔리윤!! ㅋㅋ 요즘 상님때매 하루하루 입가에 미소와 두근거림을 안고 살고 있어요~~남친도 없는데 연애하는거 같아요~~^^ 요즘 푸른밤 라디오 임시DJ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하하허니
2009-07-23  


어디에 계시든 응원하겠습니다... 또 모르죠 그곳에서 더 많은 꿈을 꾸실도 있을지도.. 멀어지시만 않으면 어디든 괜찮아요. 행복하시고 하고 싶으신 일을 하실수 있다면... 팬의 입장입니다.
인우맘
2009-07-23  


W Korea를 정기 구독하는 언니가 새삼 고마워지네요. 학기 다 끝나시면 음악프로그램 MC나 라디오 DJ 맡아주심이 어떨런지..ㅎㅎㅎ
Katze
2009-07-23  


wow 매번 여러번의 인터뷰에서 늘 신선한 모습을 보여주는 최강 음악인 윤상 옹!!
빗자루
2009-07-26  


참으로 멋진...동생... 진정한 인간 윤상이 보입니다....그 마음 오래도록 간식하시길...
lorenssia
2009-07-27  


아..멋지고 또 부럽네요~ ㅎ
럽페어
2009-07-31  


돈이란 곧 편하고 선하고 아름다운것 왠지 가슴한켠이 쓰려지는 말이네요 ㅋ
싱싱한떡밥
2009-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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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트페이퍼 2014/12/01 5265
281 민트페이퍼 11월의 potm 장기하와 얼굴들 – 비하인드 스토리  
 
바쁜 투어일정 중에도 라디오, TV 방송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장기하와 얼굴들. 최근 방송에...
 민트페이퍼 2014/11/21 2277
280 민트페이퍼 11월의 potm 장기하와 얼굴들 – 전국 투어 & 앵콜 콘서트 '장얼의 마음'  
 
지난해 장기하와 얼굴들의 연말 콘서트 제목을 기억하시나요?   '내년에는 꼭 3집 내겠습니...
 민트페이퍼 2014/11/13 2923
279 민트페이퍼 11월의 potm 장기하와 얼굴들 – 사람의 마음  
 
장기하와 얼굴들 장기하(Vocal) 정중엽(Bass) 이민기(Guitar) 이종민(Keyboards) 하세가와 ...
 민트페이퍼 2014/11/03 2193
278 민트페이퍼 10월의 potm 메이트 - End of the World  
 
MATE [End Of The World] 01. The End 02. 하루 03. 너를 떠나 04. Indi...
 민트페이퍼 2014/10/31 2103
277 민트페이퍼 10월의 potm 메이트 – Welcome back!  
 
그들이 돌아옵니다! GMF2014에서의 무대 그리고 새 음반, 콘서트로 컴백을 준비 중인 메이트 이야기...
 민트페이퍼 2014/10/13 3311
276 민트페이퍼 10월의 potm 메이트 - baby  
 
GMF2014 무대로 컴백 소식을 알리며 다시 돌아온 메이트. 10월 3일 싱글 'BABY' 공개가 예정되...
 민트페이퍼 2014/10/01 2657
275 민트페이퍼 9월의 potm 유재하 – 유재하 동문 이야기  
 
세월이 흘러도 질리지 않는 노래가 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시대의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과...
 민트페이퍼 2014/09/19 3956
274 민트페이퍼 9월의 potm 유재하 - 대중문화 속의 유재하  
 
민트페이퍼 9월의 potm 故 유재하 님. 대중음악계의 전설적인 싱어송라이터라는 수식어처럼 많은 아티스트들의...
 민트페이퍼 2014/09/11 1963
273 민트페이퍼 9월의 potm 유재하 - 사랑하기 때문에  
 
민트페이퍼 9월의 potm의 주인공은 Grand Mint Festival 2014 Hall of Fame의 헌액 아티스...
 민트페이퍼 2014/09/01 5142
272 민트페이퍼 8월의 potm 쏜애플 – 다양한 문화에 접근하는 쏜애플  
 
미술, 영화 등 음악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문화 콘텐츠와의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하는 쏜애플. 지난 6월 열렸...
 민트페이퍼 2014/08/19 4264
271 민트페이퍼 8월의 potm 쏜애플 - 라이브 영상으로 보는 쏜애플  
 
집중하게 만드는 에너지와 긴장감, 앨범만큼이나 내러티브와 콘셉트가 있는 라이브를 선보이는 쏜애플. 9월 말, ...
 민트페이퍼 2014/08/06 3351
270 민트페이퍼 8월의 potm 쏜애플 – 이상기후  
 
민트페이퍼 8월의 potm은 쏜애플입니다. 지난 6월 2집 [이상기후] 발매, 콘서트, 페스티벌과 같은 다양한 ...
 민트페이퍼 2014/08/01 3344
269 민트페이퍼 7월의 potm 제이레빗 - 제이레빗은 콘서트 준비 중  
 
민트페이퍼 7월의 potm 제이레빗. 3집 [STOP&GO] 발매 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 8월 콘서트 소...
 민트페이퍼 2014/07/21 2495
268 민트페이퍼 7월의 potm 제이레빗 - 라이브 영상 히스토리  
 
3집 [STOP&GO]를 발표한 민트페이퍼 7월의 potm 제이레빗. 여러분은 제이레빗을 처음에 어떻게 알게 되...
 민트페이퍼 2014/07/07 2285
267 민트페이퍼 7월의 potm 제이레빗 - STOP&GO  
 
민트페이퍼 7월의 potm은 세 번째 정규 앨범 [STOP&GO]를 발표한, 제이레빗과 함께 합니다. ...
 민트페이퍼 2014/07/01 3735
266 민트페이퍼 6월의 potm 스윗소로우 - 소극장 콘서트  
 
7월 3일부터 20일까지, 소극장 콘서트 '화음'에서 12번의 공연으로 우리를 만날 스윗소로우. 그 연습 현장...
 민트페이퍼 2014/06/23 4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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